호수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자기 깊이를 잰다 — 소로 『월든』 「호수들」을 듣고 | DAKER 커뮤니티
한 권을 다 읽을 여유는 없지만 한 장만큼은 천천히 머물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 저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꺼냅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을 혼자 살면서 쓴 이 책에는 모두 열여덟 개의 장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중 9장 「호수들」 한 장만 들었습니다. 출판사 현대지성이 자사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오디오북 「월든|호수들|명언|헨리 데이비드 소로|오디오북」(https://www.youtube.com/watch?v=NpAWjPK4ZHo)입니다.

영상 설명란에 따르면 이 영상은 현대지성판 『월든』 오디오북 가운데 9장만 따로 떼어 만든 것이고, 전체 오디오북은 17시간 4분 분량이라고 합니다. 이 영상의 길이는 1시간 10분입니다. 설명란에 있는 서점·쇼핑몰 구매 링크와 단축 링크는 이 글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벗어나 서쪽으로
「호수들」은 소로가 사람들에게 지치는 데서 시작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잡담에 싫증이 나면 그는 평소보다 더 서쪽으로, 인적이 드문 숲과 목초지로 걸어갑니다. 그곳에서 딴 산열매 이야기가 첫 장면입니다. 열매의 진짜 맛은 보스턴까지 가지 못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시장에 실려 가는 순간 열매는 껍질만 남고, 참맛은 직접 따 먹는 사람만 안다는 것입니다. 이 장 전체의 태도가 이 짧은 장면에 이미 들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늘에도 낚싯줄을
이어지는 장면들은 호수 위에서의 시간입니다. 말이 없는 노인과 함께 낚시를 하고, 따뜻한 저녁이면 보트에 앉아 플루트를 붑니다. 한밤중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가, 문득 줄을 물속만이 아니라 하늘로도 던질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낚싯바늘로 두 마리 물고기를 잡았다”(9장 「호수들」)고 적습니다. 물고기와 생각을 함께 낚았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제가 이 장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문장입니다.
측량하는 시인
그런데 이 장이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시적인 문장 바로 옆에 측량 기사 같은 기록이 나란히 놓인다는 점입니다. 월든 호수는 길이가 반 마일, 둘레가 1과 4분의 3마일 정도이고, 넓이는 약 61.5에이커라고 합니다. 물빛은 보는 거리와 하늘의 상태에 따라 파랑과 초록 사이를 오가고, 물이 워낙 맑아서 깊은 곳까지 바닥이 보입니다. 겨울에 얼음 위를 걷다 도끼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25피트 아래 바닥에 비스듬히 서 있는 것이 보였고, 얼음에 구멍을 하나 더 뚫고 자작나무 가지에 올가미를 달아 건져 올렸다는 일화도 나옵니다. 수위가 해마다 오르내리는 이야기, 호수의 기원에 얽힌 원주민 전설, 호수에 사는 물고기들의 생김새까지 이어집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소로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을 막연히 찬미하는 사람이 아니라 재고, 적고, 비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런 기록으로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호수는 대지의 눈
이 장의 한가운데에는 널리 알려진 문장이 있습니다. 소로는 호수를 대지의 눈이라고 부르고, 그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자기 심성의 깊이를 재게 된다고 말합니다. 호숫가의 나무들은 속눈썹이고, 둘러싼 언덕은 눈썹이라는 비유가 뒤따릅니다. 잔잔한 날의 수면은 계곡에 걸쳐 놓은 가느다란 거미줄처럼 보이고, 물고기와 벌레가 만드는 물결이 그 위에 글씨처럼 번집니다.
젊은 날의 여름 오전을 보트에 누워 떠다니며 보냈던 기억도 나옵니다. 소로는 그 시절 게으름이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일과였다고 회상하고, 그 시간을 연필 공장이나 교사의 책상에서 보내지 않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의 집안이 연필을 만들었고 그 자신도 교사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문장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변한 것은 호수가 아니라 나
그 뒤로 월든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나무꾼들이 호숫가의 숲을 베어 내고, 철도가 호수 옆으로 지나갑니다. 소로는 기차를 “철마”라고 부르며 그 소리를 못마땅해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그는 호수 자체는 어린 시절 보았던 그대로라고, “모든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을 뿐이다”(9장 「호수들」)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오랜 친구에게 하듯 호수에 인사를 건넵니다. 저는 이 장의 감정이 가장 짙게 모이는 곳이 여기라고 느꼈습니다.
장의 끝은 이웃 호수들입니다. 플린트 호수는 욕심 많은 농부의 이름을 땄는데, 소로는 이를 몹시 못마땅해합니다. 들판과 열매를 달러로 바꿀 수 있을 때만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이름이 호수에 붙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월든의 쌍둥이 같은 화이트 호수를 이야기하면서, 이 두 호수는 시장 가치로 따지기에는 너무 맑고 귀하다고 말합니다. 화이트 호수 바닥에서 거꾸로 박힌 소나무를 건져 올린 이야기도 여기에 나옵니다.
화면 앞에서 지내는 우리에게
듣는 동안 자꾸 지금 제 하루가 떠올랐습니다. 개발자나 AI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면 앞에서 요약된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삽니다. 소로의 산열매 이야기는, 직접 코드를 짜고 데이터를 들여다본 사람만 아는 맛이 있다는 말로도 들렸습니다. 호수를 몇 번이고 재고 기록한 그의 태도는 좋은 분석가가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와 닮았습니다. 그리고 “게으름이 생산적이었다”는 회상은, 아무 알림도 없이 멍하니 보낸 시간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곤 하던 제 경험과도 겹쳤습니다.
듣고 나서
「호수들」 한 장을 듣고 나니 『월든』이 은둔의 기록이라기보다 주의 깊게 보는 법에 대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로는 호수를 보고, 재고, 거기에 비친 자기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물이 맑아서 바닥의 도끼까지 보였다는 이야기가 오래 남는 것도, 결국 그만큼 맑게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1시간 남짓이라 산책하면서 듣기에 알맞은 길이입니다. 가까운 곳에 저수지나 강이 있다면, 한 번쯤 물가에 앉아 이 장을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저에게도 저만의 월든이 어디일지 생각해 보게 되는 저녁이었습니다.
출처
- 오디오북: 현대지성(출판사 공식 채널), 「월든|호수들|명언|헨리 데이비드 소로|오디오북」(2022-05-04), 9장 「호수들」 발췌 낭독 — https://www.youtube.com/watch?v=NpAWjPK4ZHo
-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현대지성
- 위키백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 https://ko.wikipedia.org/wiki/헨리_데이비드_소로
- 위키백과, 월든 — https://ko.wikipedia.org/wiki/월든